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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종중행사 게시판/족보 편찬 (7)
cq쟁이
경술보 역문[譯文]주[周]나라에서 계보를 맡아온 소사[小史]라는 관직이 폐지된 뒤로부터 족보가 나왔으니 족보라는 것은 조상[祖上]을 밝히고 씨족을 거두는 의리[義理]이다. 족보는 또한 세대의 연고가 많은데서 나누어지니 많은 단말[端末]의 폐단이 혹은 그러하나 義理의 정의[情誼]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다.내가 매양 여기에 탄식하였는데 불행하게도 우리 종족에서 있게되니 나로부터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면 진실로 상심할 것이 있게되니 나로부터 그렇게 된것이 아니라면 진실로 상심할 것이 있겠는가. 나는 참지 못해 그런 것이다.씨족을 보[譜]하는 것은 대사[大事]이다. 의논[議論]이 발한지 오래되어 각파의 세계단자가 이미 제다 이르렀은즉 또한 불가한 두사람의 딴길로 가는 말썽으로서 그역사[役事]를 정지[停止]하지 못..
신사보 序文 一家가 족보를 가지게 된 것은 오래 되었다. 족보는 그 내용이 진실로 자세하여야 하고 외면 또는 줄여서는 아니 되느니라. 만일 내용만 자세하고 외면을 갖추지 아니한다면 어찌 일러 족보라 하리요, 우리 一族이 密城의 大姓인 까닭으로 세상에 甲族으로 되었으나 족보가 오히려 미진함이 있으니 내가 그로 말미암아 한탄의 세월을 보내었도다. 숙종2年 丙辰(1676년) 봄에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내가 호남의 관찰사를 이어받아 갔는데 朴紳君이 또한 와서 판관으로 일을 하니 이 판관은 나와 같은 一族으로 中祖로 부터 얼마되지 아니하여 五派로 갈라졌도다. 공직의 자리를 서로 전하는 것에 서로 대개 우열이 없다가 근래에 이르러 벼슬길에 오르는 것이 그 세대에 5명에 이르러 우리보다 2명을 넘으니 어찌 빛나는 名家..

밀성박씨 충헌공파 족보 약사[略史] 우리 밀성박씨 충헌공파 족보는 판서공(휘 밀양) 후 참의공(휘 경)파 고암공(휘 관)의 손자 동호공 대사간 박정원 선조의 둘째아들 농아 대사헌 박천영(朴千榮)공과 동호공의 백형 장주공(휘 진원) 손자 청숙 호조판서 박신규(朴信圭)공과 족친 대제학공(휘 대양) 후 돈계공파의 충청도관찰사 박신(朴紳)공과 함께 우리 일족이 밀성의 대성에 세상의 갑족으로 오래된 족보의 미진함에 양 종중의 가보(家譜)을 정리 정사년(1677년)에 족보를 엮어놓고 미쳐 인쇄를 못하고 농아공과 청숙공이 돌아가신 후 신사년(1701년)에 감사공(휘 신)과 선산공(휘 중규) 함께 의논하고 구보(舊譜)를 정리하여 인쇄 간행한 신사보(辛巳譜)가 우리파의 최초 족보이다. 서문은 정사년에 청백리 증영의정 행..

밀성박씨 충헌공파 대동보(族譜) 발간안내 밀성박씨 충헌공파 대종회에서는 1997년 丁丑譜 발간 후 새로이 대동보를 발간하기로 지난 2021년 정기총회에서 의결하여 편찬위원회를 구성하고, 족보발간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전국의 종원 여러분께 알려 드립니다. 홈페이지 www.밀성박씨충헌공파.com 참고하세요! 밀성박씨 충헌공파 대동보(족보) 발간안내 밀성박씨 충헌공파 대동보(族譜) 발간안내 밀성박씨 충헌공파 대종회에서는 1997년 丁丑譜 발간 후 새로이 대동보를 발간하기로 지난 2021년 정기총회에서 의결하여 편찬위원회를 구성하고, 족 cafe.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