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q쟁이

[스크랩] 익성사 본문

나의뿌리/밀성 박씨

[스크랩] 익성사

梅谷 2007. 5. 28. 13:18
익성사는 밀양시 내일동(密陽市 內一洞) 아북산(衙北山)기슭에 자리잡하고 있으며. 신라말(羅末) 고려초(麗初)에 군도(群盜)를 토벌하여 태조(太祖)의 건국사업에 공(功)이 많은 삼한벽공도대장군 휘 욱(三韓壁控都大將軍 諱 郁)의 소상(塑像)과 그 두 부인(夫人의 소상(소상)을 봉안하고 공(공)의 아들 요동독포사 휘 난(遼東督捕使 諱 瀾)의 위판(位版)을 봉안하여 춘추로 제향(祭享)하는 사우(祠宇)다. 문헌에 의하면 원래는 밀양부(密陽府)의 성황사(城隍祠)로서 추화산정(推火山頂)에 있었는데 그 성황사 주신(城隍祠主神)으로 삼한벽공도대장군 휘 욱(三韓壁控都大將軍 諱 郁)과 그 두부인 그리고 삼중대광사도 광리군 손긍(三重大匡司徒 廣理君 孫兢訓: 밀양 손씨의

익성사(翊聖祠) 경남 밀양시 내일동
上祖) 등 사위(四位)의 소상(塑像)을 봉향하여 관부(官府)에서 제향을 올렸다. 1580년(선조13庚辰)에 부사 하진보(府使 河晋寶)가 연로(年老)하였는데 산정(山頂)에 오르내리기가 불편하다 하여 성내(城內 內一洞 신당마을)로 이건(移建)하였고 1674년(현종15甲寅)에 부사 이희연(李喜年)이 다시 남림중(南林中: 三門洞)으로 이설(移設)한 일이 있었다. 1875년(고종12乙亥)에 고을 유생 안인원(安仁遠)등이 도백(道伯)에게 진정하여 성황사(城隍祠)의 원위치를 찾아 추화산정(推火山頂)으로 복원재건하고 추화사(推火祠)라 하였다.
1910년(순조4庚戌) 이후로 관에서 제사하던 것이 폐지되어 후손들에 의하여 제향하여 오다가 1912년에 향우(享宇)가 심히 퇴락(頹落)하여 이를 후손들이 성력(誠力)을 모아 중수(重修)하였다.

삼한벽공도대장군 목상(三韓壁控都大將 木像)
지정번호 : 경상남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213호
소유자 : 밀성박씨문중
소재지 : 밀양시 내일동 329-1 (익성사 내)
수량 : 1기
시대 : 미상

이 목상(木像)은 라말려초(羅末麗初)의 인물인 밀성 박씨의 상조(上祖) 박욱(朴郁)의 상(像)인데, 그는 고려태조 왕건을 도와 건국사업에 공이 많아서 삼한벽공도대장군이 된 사람이다.
목상이 만들어진 연대는 알 길이 없으나 원래 밀양부의 추화산성에 있던 성황사에서 성황신으로 받들던 것인데, 후손들이 고종 31년(1894년)에 익성사를 창건하여 옮기고 그의 아들인 요동독포사(遙東督捕使) 박란의 위패와 함께 봉안하고 있다.
출처 : 밀성박씨충헌공파동호공종친회
글쓴이 : 지구인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