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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뿌리/충헌공파

[스크랩] 충헌공4세 대제학공 휘윤문 행록

梅谷 2007. 6. 1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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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자는 질부이다. 밀성군 척의 증손이며 충숙왕 원년에 장원급제하다. 고려조때 일품 최고위직인 삼중대광 보문각대제학에 이르시고 밀성군에 봉군되었으며 유교 문화를 고려에 앞장서 받아 들이시고 시행하신 분이다. 서기 1310년생이며 서기 1372년 8월 20일에 졸하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유교 문화를 최초로 도입하시 안향의 손자 안목선생과는 동서지간으로 당시 갑족 이었음을 알수있다. 안목선생은 괘현 문정공 광산 김태현의 큰 사위이고 박윤문께서는 둘째 사위 이시다. 밀성군 박윤문 묘소는 밀양시 하남읍 귀명동 구봉산 남향 하단이며 묘하에 경모재란 재호하에 본관과 동재 서재가 있다.

배위 해양군부인 광산 김씨는 임인 서기 1302년생으로 홍무 갑인 1374년 8월에 졸하니 수가 73세이시다. 부는 참의정승으로 문정공이요 휘는 태현이다. 조부는 문하시중 순이요 증조는 대장군 종완이다. 외조는 낭장 개성 왕정조이다. 부인의 4자가 등과하여 평생나라에서 녹을내리다. 문충공 포은 정몽주께서 묘지를 지었다.

공의 증조는 밀성군이니 고려 충선왕조의 내부시승으로 순충동덕찬화공신에 봉작되고 금자광록대부에 시호를 충헌공으로 추증하고 사패지를 내려 봉사케 하고 공신의 자손으로 하여금 세세로 질녹을 수급하였다. 조부의 휘는 성진이니 협찬공신조현대부에 흥위의에 정용장군으로 황증 문하평리이고 부의 휘는 원이니 판전교사사에 규의선력공신으로 밀성군에 봉작되고 황증 문하찬성사이다.

충목왕 원년에 문사 38인을 선출하고 날마다 왕을 뫼시고 글을 읽을때 공이 기거랑 주참하여 저술 하였다. 목은 이색이 김씨 부인의 4자의 등과를 축하하며 이르기를 형제연중이라 함은 지금 세상이 다같이 알고 있는바는 밀성박씨에 왈 밀양 왈 대양 왈 삼양 왈 계양이라 일컬었다.

충숙왕 7년 밀성군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자 당시 벼슬이 지평이셨던 공께서는  시묘살이 삼년을 하시어 감탄할만한 효행이 새롭게 일어났다. 그리고 공의 문학적인 재질과 학문의 폭에 대하여 많은 기록이 목은 이색의 아버지 가정 이곡선생의 가정집 권9집에 실려있다. 공이 밀주인물로 여지승람에 실려있고 순성군 안원숭이 지은 공의 행록에 쓰여있다. 공의 11세손 신(대제학공파)이 동래부사시절 포은 정몽주께서 지은 해양군부인 묘지를 발견하였으며 12세손 성주부사 중규(판서공파)가 표석을 건립하였다.

공의 장남 밀양판서공파조로 과거에 올라 전법판서를 역임하고 봉순대부 판전교시사로 밀산군에 봉작되고 차남 대양대제학공파조로 과거에 올라 진현관대제학으로 삼중대광 전법판서로 익조공신의 밀천군으로 봉작되고 삼남 소양진사공파조로 진사로서 지절이 크고 굳세어 성균관 진사시험 이후 고려말의 정치적 혼란을 보고 성절사로 중국에 들어가 산남염방사의 직책을 얻어 경사를 왕래하였다. 사남 삼양정언공파조로 벼슬은 정언으로 계림고을로 출사하고 판서에 이르렀다. 오남 계양은 참찬공파조로 진사시험에 장원급제하여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동년에 급제하여 관직이 정헌대부로 검교참찬에 의정부사이다. 육남 재양장사랑공파조로 관직이 장사랑과 추밀원사에 이르니 세상에서 칭하기를 육남 대가라 이르렀다. 휘밀양은 장경공 유돈지의 여에게 장가들어 이남을 두었으니 중랑장 충민공 경의와 전서인 경인이며 딸넷은 별장인 구희와 밀양박씨 규장공파 중랑장인 박침과 청주판관인 장연이 그 사위이며 막내딸은 출가하지 않았다.

출처 : 밀성박씨충헌공파동호공종친회
글쓴이 : 박지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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